“이승만? 그 독재자?”
“아냐, 건국의 아버지잖아.”
사람들은 이승만을 이렇게 말한다.
그런데 재미있는 건,
누구도 온전히 ‘이승만’을 아는 건 아니다.
어떤 사람은 그를 영웅으로만 기억하고,
또 어떤 사람은 그를 철저히 악인으로만 기억한다.
하지만 진짜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.

❗문제는, 공과 과를 따로 떼어 해석한다는 것
우리는 너무 쉽게 한 인물을
“흑” 아니면 “백”으로 구분해버린다.
하지만 이승만을 그렇게 단정하면,
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를 절반밖에 이해 못 한다.
✅ 이승만의 공(功) – 자유주의 체제의 설계자
1. 1948년, 대한민국 정부 수립 주도
- 남한 단독 총선과 정부 수립
-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세계에 인정받게 만든 첫 대통령
- 📌 이 선택이 없었다면, 남한은 지금과 같은 체제가 아니었을 수 있다
2. 한미동맹 체결 – 전후 생존의 외교전
-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
- 미국과의 동맹으로 북한의 재침 우려를 차단
- 📌 이 조약이 없었다면 지금의 주한미군도, 한미 공조도 없었을 가능성
3. 교육·언론 기반 마련
- 서울대·이화여대 등 고등교육 체계 정비
- 초기 언론 자유도 인정 → 현대 언론사 뿌리
- 📌 후대 엘리트 지식인 양성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음
❌ 이승만의 과(過) – 민주주의의 파괴자
1. 헌법을 바꿔 장기 집권 시도 (사사오입 개헌)
- 초대 대통령 3선 가능하게 개헌 → 정치적 편법
2. 3.15 부정선거 → 4.19 혁명으로 퇴진
- 조직적 부정선거 강행 → 국민 봉기
- 결과: 자택 포위, 하야, 하와이로 망명
3. 정적 탄압 – 조봉암 사형 사건 등
- 진보당 조봉암, 간첩 혐의로 사형 → 훗날 무죄 확정
- 언론·지식인 탄압 → 민주주의 질식
🤔 그런데 흥미로운 건,
이 공에도 반대가 있고, 이 과에도 옹호가 있다.
공(功)에 대한 비판
- “정부 수립 = 분단 고착화의 시작”
- “한미동맹 = 자주 외교 포기”
- “교육 확대 = 일부 계층 중심의 불균형”
과(過)에 대한 옹호
- “장기 집권은 당시 안보 상황에서 불가피”
- “3.15는 이기붕 계열의 독단”
- “정적 탄압은 냉전기 보안 논리의 산물”
🗳️ 왜 정당마다 이승만을 다르게 말할까?
| 정당 | 이승만에 대한 시각 | 배경 논리 |
|---|---|---|
| 국민의힘 | "건국 대통령, 체제 설계자" | 1948년 건국론, 반공 자유주의 정통성 |
| 더불어민주당 | "장기 집권 독재의 상징" | 1919년 임정 계승, 민주화 계보 중심 |
➡️ 결국, 이승만을 어떻게 보느냐는
대한민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.
📚 신뢰 기반 참고 자료
- 유영익, 「이승만 대통령 업적 재평가」, 『역사학보』
- 정병준, 『우남 이승만 연구』
- 김영희, 「이승만 정부의 언론 통제 분석」, 『한국언론학보』
- 대한변협, 「조봉암 재심 판결 해설」
💬 당신은 이승만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?
- 나라를 만든 사람인가?
-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사람인가?
- 둘 다인가?
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,
당신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여줍니다.